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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이디
cyh0211
날짜
2013-11-20 오후 2:41:56
제목
한자어로 ‘파락호’라는 말이 있습니다.
양반집 자손으로써 집안의 재산을 몽땅 털어먹는
난봉꾼를의미합니다.
이
파락호
중에
일제
식민지
때
안동에서
당대의
파락호로
이름을 날리던 학봉 김성일의 종가의 13대 종손인
김용환이라는
사람이
있습니다
.
그는
노름을
즐겼다고
합니다
.
당시
안동
일대의
노름판에는
꼭
끼었고
초저녁부터
노름을
하다가
새벽녘이
되면
판돈을
걸고
마지막
배팅을
하는
주특기가
있었다고
합니다
.
만약
배팅이
적중하여
돈을
따면
좋고
,
그렇지
않고
배팅이
실패하면
새벽
“
몽둥이야
”
하고
큰소리로
외쳤다고
합니다
.
이
소리가
나오면
도박장
주변에
잠복해
있던그의
수하
20
여명이
몽둥이를
들고
나타나
판돈을
덮치는
수법을
사용
했다고
합니다
.
판돈을
자루에
담고
건달들과
함께
유유히
사라졌던
노름꾼
김용환
.
그렇게
노름하다가
종갓집도
남의
손에
넘어가고
수
백
년
동안의
종가
재산으로
내려오던
전답
18
만평
,
현재
시가로
약
200
억
원도
다
팔아
먹었다고
합니다
.
그렇게
팔아먹은
전답을
문중의
자손들이
십시일반으로
돈을
걷어
다시
종가에
되사주곤
했다고
합니다
.
“
집안
망해먹을
종손이
나왔다
”
고
혀를
차면서도
어쩔
수
없었습니다
.
당시는
종가는
문중의
구심점
이므로
없어지면
안
되기
때문이었습니다
.
한번은
시집간
무남동녀
외동딸이
신행
때
친정집에
가서
장농을
사오라고
시댁에서
받은
돈이
있었는데
이
돈마저도
친정아버지인
김용환은
노름으로
탕진했습니다
.
딸은
빈손으로
시댁에
갈수
없어서
친정
큰
어머니가
쓰던
헌장농을
가지고
가면서
울며
시댁으로
갔다는
일화도
있습니다
.
이
정도니
주위에선
얼마나
김용환을
욕했겠습니까
?
김용환은
해방된
다음
해인
1946
년
세상을
떠납니다
.
이러한
파락호
노름꾼
김용환이
사실은
만주에
독립자금을
댄
독립투사였음이
사후에
밝혀
졌습니다
.
그간
탕진했다고
알려진
돈은
모두
만주
독립군에게
군자금으로
보냈던
것이
밝혀졌습니다
.
독립자금을
모으기
위해
철저하게
노름꾼으로
위장한
삶을
살았던
것입니다
.
그래야
일제의
눈을
피할
수
있었기
때문입니다
.
김용환은
독립군의
군자금을
만들기
위하여
노름꾼
,
주색잡기
,
파락호라는
불명예를
뒤집어쓰고
살면서도
자기
가족에게
까지도
철저하게
함구
하면서
살았던
것입니다
.
임종
무렵에
이
사실을
알고
있던
독립군
동지가
머리맡에서
“
이제는
만주에
돈
보낸
사실을
이야기해도
되지
않겠나
?”
고
하자
“
선비로서
당연히
할일을
했을
뿐인데
이야기
할
필요
없다
”
고
하면서
눈을
감았다고
합니다
.
지금
안동
독립운동기념관
에
이
김용환의
일대기가
전시되어
있습니다
.
김용환의
무남동녀
외딸로서
시댁에서
장롱
사라고
받은
돈도
아버지가
노름으로
탕진하여
큰어머니의
헌
농을
싸가지고
간
김후옹여사는
1995
년
아버지
김용환의
공로로
건국훈장을
추서
받습니다
.
훈장을
받는
그
날
아버지에
대한
존경과
회한을
‘
우리
아베
참봉
나으리
’
라는
글을
발표합니다
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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